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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낙동강 중류지역에서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같은 우뚝한 유현儒賢들이 출현하여 낙중학을 이끌었지만, 조선 후기로 오면서 낙중학은 뚜렷한 유현을 배출하지 못한 채 낙동강 상류지역 중심의 범퇴계학권凡退溪學圈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갔다. 그런데 조선말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낙중지역인 성주에서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이 출현하면서 낙중학은 다시 부흥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으며, 영남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학계의 중심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진상은 일찍이 자신의 재실에 ‘조운헌도祖雲憲陶’라 편액하여 ‘운곡雲谷(朱子)를 조술하고 퇴도退陶(李滉)를 헌장하겠다’는 뜻을 세워 ‘심즉리설心卽理說’이나 ‘리발일도설理發一途說’과 같은 독창적 성리설을 제기하였으나, 그것이 이황의 학설과 어긋난다 하여 영남지역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것은 곧 낙중과 낙상 영남유학계의 분화를 의미함과 동시에 한주학의 등장과 낙중학의 부흥을 의미한다. 그는 스스로 ‘문자벽文字癖’이 있다고 말했듯이 성리학 관련 저술뿐만 아니라 예학과 역사학, 경세학 등 다방면으로도 관심을 가져 많은 저술을 하였다. 이것은 조선 중기의 낙중 선현인 정구를 떠올리게 하며, 낙중학의 한 특성으로 자리매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진상에 관한 연구는 금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이뤄져 그에 대한 평전과 연구서가 몇 권 출간된 상황이다. 그가 조선말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였으므로 대부분의 연구가 그의 성리학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성리학 이외의 부분까지 한주학을 주목한 저술은 본 책이 처음인 것으로 판단되며, 또한 조선말 낙중학의 부흥이라는 관점에서 한주학을 바라보는 것이 본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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